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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카르페 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쓸데없는 시간이라 생각했어요. 좋아서 시작했다기보단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거든요. 그렇게 블로그 글쓰기를 이어갔지만, 계속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목표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호기롭게 목표도 세웠습니다.
100일을 기준으로
처음 한 달간은
하루에 무조건 블로그 글 한 개 이상,
두 달부턴 일주일에 글 10개 이상,
마지막 세 달째 하루 2개씩 발행하기.

그렇게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반려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 계획엔 심각한 오류 세 가지가 있었어요.

첫째, 1일 1포라는 압박감 때문에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보단 책을 읽는 것. 즉, 줄거리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책 읽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때론 한 문장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계속 곱씹으며 생각하기도 하고, 바쁘고 피곤한 일정으로 제대로 된 책 읽기를 할 수 없을 때도 있죠. 그런데 1일 1포로 매번 새로운 책을 쓰고 소개한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였어요.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래, 얇은 그림책을 리뷰하자!' 했지만,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생각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책을 읽어주는데 급급해졌어요. 결국 책이 문제가 아니라 무리한 목표를 세웠단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둘째, 지나치게 방문자와 조회수에 집착하게 됩니다.
보상심리라고 하죠.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최소 이만큼은 해야지. 그게 공평하잖아?'라는 이상한 논리가 생깁니다. 안 읽히는 책도 열심히 읽고, 그걸 또 시간 들여서 열심히 썼으니 보상심리를 원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거예요. 문제는 그걸 내가 할 수 없는 외부에서 찾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으니 오늘은 달달한 커피를 먹어야겠다. 이건 어때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커피숍에 가거나 집에서 시럽을 넣어서 마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방문자와 조회수는 어때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같은 글을 올려도 어느 날은 방문자가 많고, 어느 날은 적을 수 있어요. 아, 오늘은 방문자를 좀 줄일까? 이 글은 조회수가 왜 이렇게 적어? 좀 낮춰야겠다. 이게 가능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걸 바라게 돼요. 그래서 기껏 열심히 잘 쓴 글을 조회수가 낮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글쓰기가 질린다는 겁니다.
그나마 잘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 시작한 블로그가 꼴도 보기 싫어져요. 목표를 채웠으니 100일은 어떻게 꾸역꾸역 이어나가긴 하는데 문젠 그다음이에요. 100일을 채우고 인플 도전을 했어요. 잘해서 인플이 되면 다행이지만 요즘 인플이 많아져서 인플 되기가 더 어려워졌거든요? 근데 달랑 100일 열심히 했다고 인플을 주느냐? 줄 수도 있죠. 그건 네이버 마음이에요. 근데 거의 그런 경우가 드물어요. 그렇게 인플이 반려됐단 메일을 받으면 그때부턴 아예 블로그 로그인도 안 합니다. 상처도 받았고, 그동안 꾸역꾸역 이어오던 글쓰기도 질려버리는 거죠. 몇 달간의 치유기간을 갖고 돌아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ctrl+c, ctrl+v 하는 거죠.




그런데 전 왜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게 좋아서입니다. 틀과 제목에 맞춰 매일 새로운 책을 리뷰한다는 네이버에 쓰는 글은 질렸지만 그날 읽은 한 페이지, 한 문장, 한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좋거든요.

'어제부터  '고전이 답했다'란 책을 읽고 있어요. 오늘은 책에서 카르페 디엠이란 문구를 봤거든요., 근데 그게 얼마 전 본 영화 '죽은 시인에 사회'에서 국어선생님이 한 말이었어요. 아는 단어를 만난 게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러면서 영화이야기가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이 부모님의 말이 법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갑작스럽게 자유에 대해 알려줬어. 너무 성급했던 거지. 근데 책에서 그 말을 또 보니깐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이 그때 그 알을 깨지 않았다면 과연 아이들이 그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어리다는 기준은 누가 정한 거지?'' 이렇게 제가 생각하고 느낀 점을 쓴 글은 너무 재밌어요.

오늘까지, 아니 조금 아까까지는 이런 에세이 같은 제 글을 적는 게 시간낭비란 생각이 들었어요. 먹고 살기 편한 아줌마가 할 일 없으니깐 책이나 읽고 편한 소리 하고 앉았네? 같았거든요. 그런데요. 이게 세상을 충실하게 사는 '카르페 디엠' 이더라고요.

"카르페 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충실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내용이 알차고 단단하다'에요. 내 하루를, 지금을 알차고 단단하게 채우자. 즐긴다는 건 그냥 소비하는 느낌이다. 알차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생산'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생산' 할 수 있는가? (중략) 내가 생산한 음식과 책으로, 내가 돈을 벌고, 그 돈을 내가 소비하면 알차고 단단한 것인가? 아니다. (중략) 이전까지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했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서야 '나'가 아닌 '남'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나를 위해서 생산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생산한다? 결국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면 되겠구나.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내 인생을 바꿨다. '가치'는 '같이' 사는 것이다.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가치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중에서  (고명환 지음 / 라곰)

저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육아, 요리, 빨래, 청소, 독서, 글쓰기 등이고 제가 생산할 수 있는 건 요리와 글쓰기예요. 요리는 가족을 위해 하고 있고, 글쓰기는... 아직 절 위해 쓰는 게 반 이상이지만, 그중 조금은 다른 분들이 읽으며 위로와 공감을 받면 좋겠다란 생각으로 글을 써요. 그러니 일부는 타인, 즉 '남'도 생각하며 생산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거죠.

아직은 능력치가 작아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남을 위로해 주고 공감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글을 쓸 수 있단 것을요. 그리고 그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것도요.


쓸데없는 시간,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는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는 카르페 디엠과 고명환 님이 1000일 넘게 실천하고 계시는 긍정확언을 제 버전으로 바꿔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세계적으로 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과 긍정, 감사를 심어주는 선한 영향력을 심어줄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일들을 다 이뤘다.

카르페 디엠, 현재 이 순간을  충실하라.

감사합니다^^